Monday, February 28, 2011

88 서울올림픽의 추억 - '손에 손잡고'

88 서울올림픽의 추억

그리고 정적. 10만이 들어찬 경기장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관중의 귓전엔 바로 전 태권 격파의 함성이 이명(耳鳴)처럼 울렸다. 느닷없는 고요. 사람들은 내심 술렁였다. 아니, 왜 행사를 계속하지 않지? 프로그램 실순가? 1초도 짬이 없어야 하는데… 당황하며 어리둥절한 그때. 북동쪽 출입구 풍선터널을 통해 한 작은 소년이 그라운드로 들어섰다.

흰 반바지에 반팔셔츠. 하얀 모자 붉은 챙. 소년은 잠깐 관중석을 올려보더니 곧 그라운드 한가운데로 달려 나갔다. 그는 굴렁쇠를 굴리고 있었다. 파란 운동장에 하얀 점이 움직였다. 은색 원이 반짝이며 살아 굴렀다. 숨조차 멈추게 하는 기막힌 장면. 여성들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남자들은 눈을 크게 떴다. 모두 목을 길게 뺐다. 어떻게 해, 굴렁쇠가 쓰러질 것 같아.



88년 9월 17일. 세계의 잔치가 서울에서 열리다

딱 한번 비틀했을 뿐 소년은 그라운드 중앙까지 ‘무사히’ 달렸다. 센터 서클에서 굴렁쇠를 탁 잡더니 어깨에 걸고 애태운 관중을 향해 앙증맞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단 '1분의 퍼포먼스'. 봇물이 터진 듯 탄성이 쏟아졌다. 세계 50억 인구 축제의 날. 화려하고 웅장하며 역동적인 잔칫날. 그런데 꼬맹이 굴렁쇠 놀이라니. 믿기지 않는 감동이 물결쳤다.

1988년 9월17일 낮 서울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제24회 서울올림픽은 그렇게 사람들의 심장을 뒤흔들며 시작됐다. 태곳적 인류부터 꿈꾼 번영과 화합의 소망을 잔디밭 원 굴리기로 묘사한 걸까. 굴렁쇠는 현장 관중은 물론 TV로 개막식을 시청한 전 세계인의 가슴에 강력한 이미지를 심었다. 말 그대로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안긴 날이었다.

88 호돌이 윤태웅군 멋진 운동선수되는게 꿈
1988. 9. 17 [경향신문] 19면

 쨍- 청명한 가을 날씨도 행사에 빛을 더했다. 잠실 한강을 타고 오르는 4백50척 대선단과 주선의 용고(龍鼓) 위용도 파란 하늘아래 돋보였다. 76명 파라슈터들이 잠실 상공에 만든 인간 띠 오륜기 역시 파란 하늘 바탕이어서 멋이 났다. 160개 나라 8천5백 선수들이 젊음과 우정을 뽐내고 힘과 기량을 겨룬 올림픽의 막은 그렇게 용틀임하듯 올라갔다.



'마하 인간' 벤 존슨 VS '갈색 탄환' 칼 루이스

「갈색탄환」 칼루이스, 「마하인간」 벤 존슨 "내가 최고 스프린터"
1988. 9. 22 [경향신문] 13면

당시 올림픽 경기 최대의 관심은 남자 100m 달리기였다. 캐나다의 '마하 인간' 벤 존슨과 미국의 '갈색 탄환' 칼 루이스는 개막 전부터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아직까지 내 앞을 달린 인간은 없었다. "난 남의 등짝이나 보고 달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신경전을 펼친 그들의 이야기는 스포츠기사로는 이례적으로 1면 톱을 장식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스는 올림픽 두 달 전 9초78이라는 역대 최고기록을 세웠다. 비록 뒤바람이 강해 공인을 받진 못했지만 마의 9초8 벽을 깬 건 그가 최초였다. 반면 존슨은 공인 세계기록 9초83을 보유하고 있었다. 9월24일 오후 1시30분. 결승 트랙에 선 그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애써 상대를 무시했지만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

드디어 총성. 용수철처럼 누구보다 먼저 뛰쳐나간 건 존슨이었다. 60m 지점까지 그는 다른 7명 주자를 1∼2m 앞서 나갔다. 손바닥을 밖으로 튼 기묘한 주법. 중반에 루이스가 롱 스트라이드로 따라 붙었지만 그는 틈을 주지 않았다. 무쏘처럼 숨을 내뿜으며 돌진했다. 단 46보. 9초 79. 자신의 세계기록을 0.04초 단축한 대기록. 루이스는 9초 92, 존슨에 0.13초 뒤졌다.

그러나 존슨의 100m 제왕 등극은 3일 천하로 끝난다. 경기 후 약물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고 메달은 박탈됐다. 캐나다는 물론 서방세계의 자존심도 무너졌다. 그전까지 세계 스포츠에서 약물 말썽을 일으킨 건 언제나 동구권 선수들이었다. 서방에선 "공산국가 선수들만이 지도자 동지를 의식해 약물을 쓴다."고 비아냥댔으나 존슨의 사례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벤 존슨 약물복용 금메달 박탈
1988. 9. 27 [동아일보] 1면



멋과 미를 갖춘 그녀는 ‘달리는 패션모델’

육상3관왕 미국 그리피스 조이너
1988. 12. 14 [동아일보] 13면

남자 육상 간판인 100m가 추문에 말렸지만 여자 육상은 달랐다. ‘달리는 패션모델’ ‘세기의 스프린터’ 그리피스 조이너(미국) 덕분이었다. 그녀는 하루에 세계신기록을 두 번 세웠다. 9월29일 낮 여자 200m 준결승에서 종전 세계기록을 0.15초 단축하더니 1시간 40분 뒤 결승에선 또 0.22초를 단축했다.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대기록이었다.

100m와 400m 계주도 석권, 3관왕에 오른 그녀의 팬서비스는 그야말로 명품이었다. 짙은 화장에 대담한 노출, 길게 기른 손톱에 형형색색 매니큐어, 출렁이는 머리칼과 근육질의 야성미까지… 다른 선수들은 게임에 앞서 심호흡을 하지만 그녀는 곱게 화장을 한다. 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단 10초짜리 자신의 주파를 숨죽여 지켜보고 환호하는 관중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경기 뒤 화장이 땀으로 얼룩져 엉망이 되면 그녀는 또 화장을 고친다. 기자회견에 나설 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왜? 사랑하는 사람에 자신의 모든 걸 알려주고 더 사랑받을 수 있게 보도하는 이들이 기자니까. 그런 프로정신으로 그녀는 잠실운동장을 달리고 또 달렸다. 장딴지 근육이 출렁이고 심장이 터지는 고통도 웃음으로 감추면서.



'우.생.순.'의 탄생 신화! 구기사상 최초의 금메달

육상종목은 세계의 관심을 끌었지만 한국인에게 88올림픽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 건 여자 핸드볼 팀이었다.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신화가 생기기도 전의 일이었다. 9월29일 밤 수원 실내체육관. 한국 대 소련의 결승리그 마지막 경기.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유고에 져 1패를 안고 결승에 올라 우승 가능성이 낮았다. 그러나 경기 직전 노르웨이가 유고를 이기는 바람에 다시 소련을 이기면 우승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처음 경기는 한국의 뜻대로 풀렸다. 전반 13대 11, 후반 10분까지도 16대 12. 낙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섣부른 예단은 금물. 후반 중반 9분 동안 소련에 내리 5골을 헌납해 거꾸로 패색이 짙어졌다. 이때부터 한국여인들의 독기가 나왔다. 키는 평균 10cm나 더 크고 몸집도 두 배는 됨직한 소련선수들의 전후좌우를 번개처럼 교란하며 날아 다녔다.

여자 핸드볼 구기사상 첫 금메달
1988. 9. 30 [동아일보] 1면

소련선수들이 북극곰이라면 한국선수들은 빗자루를 타고 나는 마녀였다. 아니, 제비였다. 가볍게 떠오르다 어느새 다이빙하듯 몸을 던져 골대에 볼을 넣었다. 8천 관중은 실성한 것처럼 "코리아"를 외쳤다. 체육관은 땀과 열기, 함성으로 들썩이며 후끈거렸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아대는 신출귀몰의 묘기에 북극곰은 그저 허우적대기만 할뿐이었다.

최종 스코어 21대 19. 동점 5번, 역전 2번의 혈투가 끝났음을 알리는 버저가 울리는 순간 선수들은 그대로 코트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코칭스태프도 함께 울었다. 그리고 그 늦은 시간 전국의 가정에서 "이겼다!"는 함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한국 구기사상 최초의 금메달. 세월이 지나 '우생순' 감동을 재연할 한국여자 핸드볼 팀의 탄생신화는 그날 그렇게 씌어졌다.



환호와 감동, 추태와 한심..올림픽 뒷이야기

뒷머리 부딪치는 순간
1988. 9. 20 [동아일보] 5면

서울올림픽 감동드라마는 이뿐이 아니다. 동독의 '미녀 물개' 크리스틴 오토는 자유형 배영 접영 계영 혼계영에서 6개의 금메달을 따내 이듬해 독일 통일로 사라질 조국에 헌상했다. 불가리아에서 터키로 망명한 150cm 단구 나임 슐레이마놀루는 역도 60kg급에서 무려 6개의 세계신기록을 들어 터키에 사상 첫 금메달의 영광을 안겼다.

미국의 루가니스는 다이빙경기에서 뒤로 돌기를 하다 스프링보드에 부딪쳐 피를 흘리고 4바늘을 꿰맸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의지로 경기를 마쳐 다이빙 종목의 금메달 2개를 독식했다. 훗날 그는 자신이 AIDS에 걸렸음을 밝혀 환자의 피가 수영장에 퍼지면 다른 선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란을 일으켰다. 물론 감염 등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잔칫집엔 환호와 감동만 있는 게 아니다. 눈살 찌푸리는 추태와 한심한 작태 또한 심심치 않았다. 금메달 12개로 세계 4위에 오른 한국의 마지막 금메달은 누가 봐도 '훔친 게' 분명했다. 복싱 경기장에서 일어난 일. 동네북처럼 얻어맞고 얼굴이 일그러진 한국선수의 팔이 올라가는 순간 사람들은 떳떳한 패배가 창피한 승리보다 훨씬 값지다는 걸 깨달았다.

복싱은 그러잖아도 판정불복 링 점거 항의 파동으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던 판이었다. 미국의 NBC는 그걸 기화로 한국을 조롱하는 방송을 계속 내보내 외교적 마찰까지 일으켰다. 게다가 한국에 취재 온 NBC 직원들은 "올림픽 뒤 지옥에나 가라", "오 제기랄" 등의 문구를 넣고 태극기를 모독하는 티셔츠를 만들거나 입고 다녀 사람들의 감정을 극도로 상하게 했다.

미국 NBC방송 한국비난 T셔츠 주문
1988. 9. 28 [동아일보] 15면



웃고 울고 가슴 졸였던 그 해 가을은 행복했네

손에 손잡고 "서울이여 안녕"
1988. 10. 3 [경향신문] 15면

그해 국민들은 세계의 축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했다. 승용차 홀짝제를 시행해 선수 임원들이 막히지 않고 이동할 수 있게 배려했다. 기초질서도 철저히 지켰다. 심지어 소매치기들도 ‘국위선양을 위해’ 휴업을 선언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올림픽기간 16일 동안 한국을 다녀간 외국 관광객은 2백90만 명. 서울 올림픽 연 시청인원은 104억 명이었다.

올림픽 동안 웃고 울고 환호하며 가슴 졸였던 국민들은 '가을의 행복'이 지난 뒤 허탈감에 빠졌다. "이제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졌다. 중단됐던 정쟁이 다시 재개됐다. 5공 청문회 등이 열렸고 신예 노무현 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살인마"라고 외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추기: 개막식에서 굴렁쇠를 굴린 소년은 서울 잠원초등학교 1학년 일곱 살 윤태웅 군이다.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1981년 9월30일 태어난 2천4백 명 중에서 뽑힌 ‘88 호돌이’였다. 그는 지금 배우로 성장했고 TV의 ‘1박2일’ 프로에도 출연했다.

소련에겐 88올림픽이 ‘소비에트 연방’ 이름으로 참가한 마지막 올림픽이 되었다. 여러 개 나라로 분열했기 때문이다. 반면 동서독과 남북 예멘은 각각 다른 나라로 참가했으나 차기 올림픽 이전에 통일을 이뤘다.

88올림픽에 북한은 참가하지 않았다. 지금 남북한은 세계 유일 분단국가다. ‘벽을 넘어서’ ‘손에 손 잡고’ 세계평화와 화합을 제창한 서울올림픽이었지만 정작 제 국토의 화합은 일궈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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