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토털 풋볼은 거장 리누스 미켈스와 요한 크루이프만의 전유물은 아닌, 하나의 시대적 사조였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적합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켈스-크루이프’로 이루어진 축구사 역대 최고의 ‘사제 드림팀’이 토털 풋볼의 아이디어를 가장 완성도 높은 형태로 체계화, 정립, 구현했을 뿐 아니라 파급력 및 역사적 영향력의 측면에서도 최고의 공헌을 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켈스와 크루이프가 ‘토털 풋볼의 표상’으로 간주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면 토털 풋볼이란 무엇인가? 미켈스 감독은 상대가 볼을 빼앗아 나올 때 팀 전체가 뒤로 물러나 수비하지 않고 가급적 상대 골문과 가까운 위치에서 볼을 되찾아 공격을 재개하는 형태의 공격 축구를 원했다. 수비를 위해 완전히 후퇴한 후 다시 전진하는 축구는 도대체 효율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브라질 수준의 개인기 좋은 선수들이 팀 전체를 구성하지 않는 한 이러한 방식으로 좋은 공격 축구를 구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결국 미켈스의 선택은 수비 라인을 높은 지역까지 끌어올리는 한편,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는 전방에서부터의 적극적인 ‘압박’으로 상대의 볼 소유권을 최대한 높은 지역에서 빼앗는 것이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실행되는 과정에서 결국 선수들의 움직임은 ‘포지션’이 아니라 ‘공간’을 기준으로 펼쳐지게 됐다. 예를 들어 공격수들이 수비수의 역할을 수행, 상대를 압박해 볼을 탈취했을 때 효율적인 역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대로 빈 공간을 파고드는 수비수나 미드필더의 공격 가담이 필요하게 된다. 이는 동료가 비워둔 공간을 다른 동료가 메워주는 플레이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렇게 포지션과 역할을 수시로 변경하면서 ‘팀 전체가 공간을 기준으로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토털 풋볼의 핵심이었다.
결국 토털 풋볼을 수행하는 선수들에겐 상황에 맞는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는 전술적, 공간적 센스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포지션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능력, 압박에 요구되는 체력, 그리고 무엇보다 수준급의 기본기까지 필요하게 됐다. 압박을 수행함에 따라 고갈되기 쉬운 체력을 최대한 안배하기 위해서는 아군이 볼을 지니고 있는 시간을 가급적 늘려야만 하는데, 이는 선수들의 기본기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인 까닭이다. 미켈스의 위대한 구상이 그라운드 위에서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었던 것도 크루이프를 위시한 당시 네덜란드 선수들의 평균적인 우수성 덕택이었다.
특히 크루이프의 존재는 토털 풋볼의 완성에 있어 절대적인 것이었다. 크루이프는 스승 미켈스의 토털 풋볼 이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나이였을 뿐 아니라 판단력과 개인기, 스피드를 비롯 토털 풋볼을 위해 요구되는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한 마디로 아약스와 네덜란드의 토털 풋볼은 크루이프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크루이프는 팀 전체의 ‘첫 번째 방아쇠’와도 같은 존재였는데, 크루이프가 방아쇠를 당기고 나면 나머지 동료들은 그의 발사에 맞춰 자신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축구사를 통틀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의 축구 두뇌와 모든 부문에 걸친 올라운드 재능이 아니었다면 실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
No comments:
Post a Comment